" 폭풍우가 오고 있어. "
208cm · 105kg │M│24세│07.17│조선공
우미노리 슌
조선 앨리스
가늘고 긴 타입
어떤 재료든 훌륭한 배(선박)를 설계 및 건조할 수 있다.
어떤 재료든 훌륭한 배(선박)를 설계 및 건조할 수 있다. 강철, 나무, 합판, 종이, 심지어 과자도 가능할 정도로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실제 항해가 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젠 크기에 상관없이 어떤 배든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실력을 가지게 됐다. 가히 '방주 앨리스'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하는 배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굉장히 단축되어 단시간 내에 배를 설계 및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1년 만에 노아의 방주와 아주 유사한 수준의 크기의 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유의사항>
만 22세 경, 물건에 앨리스를 깃들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손맛이 최고라며 본인이 직접 망치질하고, 설계도면을 그린다. 실제로 본인의 앨리스를 깃들게 하여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 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큰 효율을 보이기도 하기에 웬만해서 물건에 깃들게 하지 않고 직접 제작한다.
[시니컬한|대범한|단순한]
당신이 아는 단순무식 우미노리 슌. 자신이 관심있는 것 이외엔 매사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며 묵묵히 지내는 시니컬함이 디폴트. 주변에서 뭐라 하든 간에 본인이 보고 느낀 것만을 옳다 느끼며 대쪽같이 나아간다. 자신의 선 안에 들어오면 한없이 다정해지고, 선 밖에 있다면 존재한단 것조차 인지하지 않을 정도로 선 안 밖이 확실한 모습을 보인다. 언제나, 늘 그렇듯, 그는 단순 무식했기에 받은 게 있다면 2배로 갚고, 당한 게 있다면 2배로 돌려줬다. 항상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단 망치를 휘두르는게 먼저인 행동파 재질도 여전하다. 고등부 때 잠깐의 방황은 접고, 완전히 예전의 우미노리 슌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행적
(1) 만 19세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그는 자신의 고향인 나가사키시로 돌아가 부모님이 다녔던 조선소 '웰러맨'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할아버지라 부르던 사장과 대화를 나눈 후 화해를 하게 된다. 이제서야 그는 할아버지가 그에게 선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고 할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학원에 공식적인 외부 출장 허가를 받고 학교에서 4~5년 과정을 이어나가는 대신 나가사키시의 '웰러맨' 조선소에서 조선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때 학교에서 미리 만들어둔 방주의 배 머리를 나가사키시에 옮겨 방주 제작 작업을 이어갔다. 방주 작업시 필요한 금액은 고등부 때 선박업 외주뛰며 받았던 것과 자신이 학창시절 동안 만들었던 배를 모두 팔아 거액의 대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학교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나가사키시 최남단, '웰러맨'조선소에만 있었다.
(2) 만 20세
1년 만에 노아의 방주라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굉장히 크고 단단한 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이름은 이후쿠베 나기사가 지어준 '앙키라 호'로 정했다.(편의상 방주로 불린다.) 얼마나 큰지 도쿄에서 나가사키시에 정박된 방주가 보인다는 과장 조금 보탠 소문이 돌 정도로 엄청난 부피를 자랑했다. 굉장히 많은 인구가 탑승해도 끄떡없을 정도로 내부도 넉넉하다. 심지어 제작 때 조선+파괴가 합쳐진 앨리스석을 사용하여 어떤 암초도 부수며 나아갈 수 있는 지상 최강의 선박을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기네스북에 선정되어 한창 뉴스에서 유명세를 탔으며, 덕분에 일본의 자랑이자 나가사키시의 명물로 불리게 되었다. 행성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생겨나며 지구종말론이 한때 유행을 탔는데, 이때 이 방주가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며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안식이 되어주기도 했다.
(3) 만 21세
앙키라호 제작으로 유명세를 탄 슌은 그 공을 할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웰러맨' 조선소에 넘기면서 조선소의 부흥에 막대한 기여를 한다. 이건 그가 고등부 때 할아버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걸 속죄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해준 거짓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뒤 사정을 보지 않고 손절해버렸던 치기 어린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속죄였던 것. 이 덕분에 '웰러맨' 조선소는 전국 조선소 중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고, 수많은 업무가 들어오면서 부를 축적해갈 수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선박 외주를 완벽히 해내면서 어린 나이에 선박업계에서 '장인'이라 일컫을 정도의 입지를 다져갔다.
(4) 만 21~24세 (현재까지)
조선공으로 살아가며 배를 계속 만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상당한 양의 부가 축적되었는데, 그는 거액이 생기는 족족 앨리스 학원에 기부하거나, 앨리스의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일상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외
- 휴대폰 개통 후 친구들과 연락을 이어갔다. 웬만한 약속들은 지켰고, 선박 제조하다 시간이 나면 다른 곳의 바다를 구경가기도 했다.
- 친구들 연락처를 모아 B반 단체라인방을 만들었다. 몇몇은 스팸인 줄 알고 나가기도 했던 것 같으나... 일단 본인은 잘 쓰고 있다. 주로 바다를 여행 가거나 할 때 바다 사진을 찍어서 올려준다.
- 친구들이 준 선물들은 모두 잘 착용하고 있다. 이후쿠베가 준 바다 모형과 이와시미즈가 눈으로 만들어준 타륜은 방 안에 장식되어 있다. 텐큐가 만들어준 목도리는 추운 날 작업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
- 앙키라호에 탑승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았으나 단 한 명도 탑승시키지 않았다. 이 배에 가장 처음 탑승할 인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니까.
현재는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나가사키시 최남단 웰러맨 조선소 앞에 정박되어 있다. 너무나도 커서 웰러맨 조선소를 가리는 그늘을 만들 정도.
- 작업장에서 지내다보니 담배를 자주 피게 됐다. 술도 주면 거절하지 않고 넙죽 잘 마시는 편.
- 엄청난 부를 축적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나가사키시의 바닷가 바로 앞 원래 살았던 작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다.
- 요샌 손에서 망치를 놓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든 작업하기 위함인건지... 밥 먹을 때도 옆에 두고 먹는다.